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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윤 개인전 <시선의 습관>

B-tree Gallery 2021.02.08 - 02.13


비국소성(Nonlocality)과 인공적 자기유사성(self-similarity)의 중간쯤에서

 

 

김주옥

전시기획 미술비평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겸임교수

 

  

강정윤 작가는 2013년, 2014년, 2017년 개인전 이후 2021년 네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강정윤 작가의 작업을, 거두절미하고 필자는 비국소성(nonlocality)과 인공적 자기유사성(self similarity)의 측면에서 해석해 보고자 한다.

 

2013년 <<Sequence Structure>> 전시에서 강정윤 작가는 일률적인 형태의 공동주택인 아파트에 사는 자신의 경험을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형태를 통해 표현하며 현대 사회와 아파트의 관계를 판옵티콘적 시각에서 해석하였다. 작가의 이러한 문제의식은 그 후 2014년 <<Surveillance Structure>> 전시에서 본격적으로 ‘감시 구조’에 대해 말하며 발전하는데, 이때부터 공간과 시선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2017년 지난 개인전인 <<Reproduction Structure>>에서는 이전부터 계속 된 ‘Structure’라는 제목에서도 보이듯 끝없이 이어지고 확장되는 동일한 형상의 반복으로 표현하며 익명의 시선을 감내하고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을 표현했다. 작가의 전체 작업을 보았을 때 형태적으로는 반복되고 비슷한 구조, 그것을 지켜보고는 시선, 숨겨진 감시의 시선과 이미지로 드러나는 피감시자가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 내용적인 면에서 작가는 일상의 삶과 태도를 생산하는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작가가 작업을 통해 말하고 있는 일상과 감시의 측면은 비슷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같은 듯 보이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서사가 숨어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하지만 마치 픽셀의 한 부분을 메우고 있는 한 조각의 인생은 멀리서 떨어져 보면 단지 전체의 매우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을 역설할 수도 있다. 작가는 훔쳐보는 대상과 보임의 대상을 구분하지 않는다. 2021년 신작인 <시선의 습관>에서는 CCTV의 감시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실시간으로 관객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은 CCTV 영상으로 송출되며 거울과 특수유리를 통해 무한히 복제되는 방식으로 영상 이미지가 표현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작가가 복제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복제된 시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인데 여기서 감시의 시선은 순환되는 동시에 바라보는 자와 바라보이는 자 사이의 관계를 순환시킨다.

 

아파트형 주거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창문을 통해 노출되면 우리는 그 광경을 볼 수 있는데, 다른 한편에서 보자면 결국 그 안에 있는 대상은 내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별반 다르지 않은 환경 속에서 살고 있고, 그로인해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일상적 보여지기>에서 아파트의 공간들을 지켜보는 시선의 주체 역시 비슷한 아파트 공간에 살고 있거나, 또는 다른 아파트 건물에서 누군가의 시선에 노출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노출은 현재 자발적으로 제공되고 있는 개인 정보의 유출의 맥락에서 고민해볼 수 있는데, 우리는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며 매일같이 어디에서나 나의 행적을 알리고 있다. 특히 어느 순간 익숙해진 QR 코드(Quick Response code)의 사용은 추상적으로 보이는 정보무늬를 통해 바코드의 제한된 용량의 한계를 극복하고 나 자신의 더 많은 정보를 담아낸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는 유비쿼터스(ubiquitous)의 디지털 정보로 기능한다. 따라서 이 감시정보는 반복되고 확장될 수 있다. <시선의 연속> 작업에서는 국가기관에서 제공하는 CCTV 영상 정보를 수집하여 수백 장의 이미지를 조합한 후 QR 코드 이미지와 합성하여 출력한 후 라이트 박스로 제작하였다. 코로나 시대에 익숙해진 QR 코드는 우리에겐 마냥 추상적인 이미지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이처럼 과거에서 이어져 2021년 최신작에서 볼 수 있는 강정윤 작가의 작업 세계는 형태, 형상, 구조, 전체와 부분을 아우르며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이 교호적(reciprocal)인 동시에 상호의존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작가는 외부 구조의 형태를 이야기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이제는 그 안에 있는 내부, 부분이 어떻게 외부, 전체와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상호성’을 생각해 보았을 때 그 원리에 더 다가가고자 물리학에 빗대어 이야기해볼 수 있다.

 

본래 과거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의 기본 원리는 원격의 상호작용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고 이를 ‘국소성의 원리(principle of locality)’를 통해 증명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 1901-1976)의 ‘불확정성의 원리(uncertainty principle)’ 그리고 닐스 보어(Niels Henrik David Bohr, 1885-1962) ‘상보성 원리(complementarity principle)’ 해석에서는 양자현상의 국소성의 문제가 검토되며 원격 작용이 실존할 수 있다는 ‘비국소성(non-locality)’ 개념이 이야기 되었다. 하나의 작인이 ‘국소적(local)’으로 연속 작용되는 것이 아니라 작인이 연속적으로 작용하지 않는 원격상태(remote state, state at distance)를 ‘비국소적(non-local)'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김영수 연구자에 의하면 이는 두 객체의 상호작용은 어떠한 작인의 매체가 존재하지 않아도 상호작용할 수 있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원격 상태의 다른 공간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어떠한 객체간의 상호성이 발견된다는 것을 확인시킨다. 필자의 예시가 정확하게 대칭되는 비유가 아닐지라도 이러한 물리학적 해석은 강정윤 작가가 이야기하고 있는 전자 감시의 시선이 어떻게 원격 감시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탐색해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서로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그 구조를 파고 들어가 보면 비국소성과 상호성의 측면이 비유적으로 드러나는지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는 작가가 집의 구조를 각인한 후 아크릴 레이어와 LED를 통해 집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과 같은 풍경을 연출하는 것이 왜 바라보는 자와 보이는 자 사이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인지를 암유(暗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작가의 작업에서 다루고 있는 전체와 부분은 어쩌면 서로 관계없어 보이지만 원격 감시를 통해 부분과 전체가 연결되는 프랙탈(fractal)적 자기유사성의 측면과도 연결지어 설명해 볼 수 있다. 브누아 망델브로(Benoît Mandelbrot, 1924-2010)는 어떤 부분을 확대하면 그 부분이 전체의 일부이자 닮은꼴을 보여준다는 ‘자기유사성(self similarity)’을 프랙탈 기하학(fractal geometry)을 통해 수학적으로 설명했는데, 이는 프랙탈 기하학의 특징으로 어떤 상의 특징이 같은 비율로 축소되거나 확대될 수 있다는 자기 근사성(self-affinoty)을 보여준다. 프랙탈은 부분들의 형태가 전체의 모습을 축소하고 있는 기하학적 형태이기 때문이다. 강정윤 작가의 작업을 프랙탈의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만델브로가 구조적 불규칙성을 정량적으로 기술하고 분석하기 위해 프랙탈 기하학을 제안했듯이 비예측적 혼돈상태를 체계적인 방법으로 사유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김지면 연구자가 설명하듯이 자연계 형태의 불규칙한 정도도 그 안에서는 규칙이 내포되어 있는데 복잡한 구조 속의 작은 부분은 그 내부의 전체구조와 똑같은 복잡한 구조를 포함한다. 또한 이러한 원리를 부분론과 총체론적(holistic) 세계관으로 살펴보자면, 모든 것은 그 자신의 부분이라는 재귀성과 어떤 사물의 부분의 부분은 그 자체가 그 사물의 부분이 될 수 있다는 이행성의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강정윤의 작업에서 보이는 구조물의 반복된 형태는 그것이 계속 이어져 개개인의 삶을 구성하고 또한 개개인의 삶의 풍경이 전체의 풍경을 만들어내는 모습과 비교해볼 수 있다. 이는 인공적 풍경 속에서 만들어지는 자기유사성의 측면에서 해석될 수 있는데, 이는 바라보는 사람-보이는 대상 간의 차이뿐만 아니라 전체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이 전체의 일부이자 그 일부 자체가 전체가 되는 계속해서 발생하는 풍경 속, 자기 닮음의 비유로 혹은 부분과 전체가 사실은 하나인 모습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참고문헌

 

 

고승학, 「화엄사상에서 ‘부분’과 ‘전체’의 의미」, 『철학논총』, Vol. 88 (2017), pp. 393-412.

김영수, 「비국소성 원리의 연역과 실험적 형이상학」, 『인문연구』, Vol. 42 (2002), pp. 19-50.

김지면, 「현대 시각언어의 기하학적 표현에 관한 연구-프랙탈 기하학 이론을 중심으로」, 『한국디자인포럼』, Vol. 12 (2005), pp. 11-20.

나이젤 레스므와 고든, 윌 루드, 『프랙탈 기하학』, 이충호 옮김, 김영사, 2009.


강정윤 개인전 <Surveillance Structure>

김종영 미술관 창작지원작가전

김종영 미술관 2015.09.18-11.29


구조에서 서사로-아파트에서 意境 Artstic conception 찾기

 


박춘호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

 


강정윤은 지금까지 아파트에서만 살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에게 집은 바로 아파트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베란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아파트단지의 모습은 그녀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한 폭의 풍경화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녀는 그렇게 익숙한 풍경이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아파트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그녀가 자신에게 아파트란 무엇인가라는 의구심이 들게 된 것이다.

 

통계에 의하면 서울시민의 반 이상이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수도권 전체로 따지면 더 할 것이다. 그래서 아파트는 우리의 삶에서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매우 커다란 의미를 가진 존재가 되었다. 강남의 '타워 팰리스'부터 시골 논 한 가운데 우뚝 선 이름 모를 건설 회사가 지은 아파트까지, 아파트는 이시대 한국을 대표하는 아이콘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우리에게, 물론 필자의 나이를 전후한 세대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런 아파트는 노래방에서 18번이었을 뿐, 성찰의 대상이 아니었다. 몇 해 전 벽안의 인문지리학자가『아파트공화국』이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하여 우리가 못했던 아파트에 대해 인문학적 성찰을 처음으로 하였다. 그리고 강정윤은 이를 소재로 몇 년째 작업을 해 오고 있다. 그녀는 너무나 익숙하기에 그저 스쳐 지나가는 풍경 속에서 작업의 모티브를 찾았다.

 

강정윤은 조각을 전공하였다. 그래서인가 그녀는 아파트가 모듈화 된 구조물이라는 점에 주목하였다. 아파트는 흔히 '성냥갑'이라 불린다. 그 이유는 사각으로 된 빌딩에 똑같은 구조로 모듈화 된 집들을 포개어 쌓아 올린 건물이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아파트 짓는 최신 공법 중에는 '일체형 슬라이딩 시스템 엘리베이터 거푸집 시공법'이 있다. 홍보물에 의하면 건설비용을 약 70%로 절감할 수 있는 획기적인 시공법이라고 한다. 모듈을 쌓아 올린 구조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아파트건설의 기저에는 포디즘Fordism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규격화된 집에서 거의 비슷한 경제력을 갖춘 사람들이 모여산다. 그러니 약간의 정도 차이가 있겠지만 취향도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차이는 그저 집안을 어떻게 치장하느냐 정도일 것이다. 크게 보면 '획일화' 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집은 가장 사적인 공간임에도 아파트는 공동주택이다. 그리고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아파트는 모듈화 된 집을 포개서 쌓아 올린 공동주택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이와 관련된 문제들로 발생한 사건들은 굳이 사례를 들지 않아도 우리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이창 Rear Window'에서와 같이 일정부분 사생활이 노출되는 문제도 있다. 뿐만 아니라 관리실의 통제도 존재한다. 이것이 공동주택 아파트에서 누리는 사적인 삶이다.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실감하는 것이 아파트라는 공간 아닐까 싶다. 이는 파편화된 삶을 사는 우리에게 아이러니다.

 

강정윤은 이번 전시에 두 점의 작품을 출품한다. 하나는 '모듈화 된 구조물로서의 아파트' 와 다른 하나는 끙동주택인 아파트'를 표현한 작품이다. 구조물과 영상물 각 한 점씩이다. 시멘트 불럭을 쌓아 올린 듯 한 형상으로 약 8x4m 크기의 커다란 구조물이 있다. 불럭안의 뚫린 공간은 모듈화 된 아파트와 같이 그 크기가 똑같다. 그 안에 약간의 변화를 주어 가구를 배치한 실내풍경을 그린 그림이 군데군데 들어있다. 앞서 살펴본 모듈화 된 아파트에서 사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함축적으로 시각화 시킨 작품이다. 영상작업은 영화 '이창'에서와 같이 공동주택이기에 침해될 수 있는, 그리고 감시될 수도 있는 사생활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전시할 영상을 촬영하면서부터 어려음을 겪었다.

 

강정윤은 2013년 개인전에 『Array Structure』,『Grid Structure』 그리고 『Sequence Structure』 라는『Structure』연작을 발표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구조에 집중한 작품들이다. 조각가로 구조에 관심을 가졌던 그녀가 이번 전시에는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영상작업을 함께 선보인다. 이번 전시제목은 『surveillance structure』이다. 번역하면 『감시의 구조』쯤 될 것이다. 영상작업은 시각이미지와 서사가 조합된 장르이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 그녀의 작업이 영상으로 확장 된 것을 보며 필자는 다음과 같이 추론해 본다. 그녀가 무엇인가를 좀 더 구체적으로 관객들에게 이야기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너무 급진적인 발언인지 모르겠으나 '예술도 인문학이다.' 그 이유는 인문학이 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이 만든 무늬를 성찰하는 학문이라 한다면, 작가도 한 시대를 살아가며 지금·여기라는 전제 내에서 삶을 영위며 작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누군가 '이념이 뿌리고 예술은 꽃'이라 한 말이 기억난다. 우리는 인문학적인 성찰을 통해 어떤 현상에 대한 추상화 과정을 거쳐 모종의 결과물을 산출한다. 그 결과물이 인문 지리학자 에게는『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책이었고, 조각가 강정윤에게는 지금까지 보여준 작품들이다.

 

그동안 강정윤의 작업에서의 변화를 간략하게 요약해 보자. 강정윤의 이번 전시의 변화를 2013년 전시와 비교해서 한마디로 요약하면 '구조에서 서사로'라고 할 수 있을 거 같다. 왜냐하면 2013년 그녀가 Structured 수식어로 Array, Grid, Sequence를 사용하였던 것이 지금은 化rveillance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작품이 형식과 내용이 조합된 결과물이라면 강정윤의 이전 작업들은 조각가로서 형식에 좀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전개된 작업이었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내용에 좀 더 많은 비중을 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무엇인가 자신이 본 것을 남다르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만의 시각으로 보ᅡ야 하는 것이다. 그저 보는 것이 아니라 관찰해야 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작가는 어떤 대상을 '시청'하며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견문'하며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고민의 결과물을 형상으로 표현해야 한다. 그간의 변화를 통해 강정윤은 아파트라는 대상을 좀 더 심도 있게 견문하기 시작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전에는 대상의 외형에 주목했던 그녀가 점차 그 내면을 살피기 시작하였다. 아파트라는 풍경을 통해 그녀가 어떤 의경을 표현해낼지 앞으로의 작업을 기대해 본다.


강정윤 제 1회 개인전 <Sequence Structure>

토포하우스 2013.10.16-10.22


분해와 조립 : 강정윤의 근작들

 


홍지석

미술비평, 단국대

 

 

강정윤의 근작들은 '분석'에서 시작한다. '분석'이란 무엇인가? '分折'이라는 한자어가 말해주듯 그것은 '나누고 가르는 일'을 뜻한다. 분석가는 이렇게 '나누고 가르는 일'을 거듭하여 분석 대상의 기본단위를 찾아낸다. 다음으로 분석가는 기본단위들이 어떻게 결합하여 전체를 이루는지를 확인하려 들 것이다. 분석가의 목표는 분석대상의 구조(structure)를 해명하는 것이다. 분석가로서 강정윤의 관찰 대상은 '아파트’다.

 

"아파트라는 건축물, 또는 건물을 구성하는 기본단위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기본단위들의 결합규칙은 무엇인가。가 이 작가의 기본 관심사다. 어떤 의미에서 아파트를 분석하는 강정윤의 태도는 단어나 문장을 커뮤니케이션의 문맥에서 떼어낸 다음 기호 자체, 기호 속성들, 그리고 그 내적 구성에 초점을 두어 분석하는 기호학자, 언어학자의 태도를 닮았다.

 

이렇게 분석에서 시작한 작업은 분석을 통해 얻은 단위와 결합규칙을 참조하여 재구성하는 일로 이어진다. 이러한 재구성 작업은 크게 계열과 결합의 축을 따라 전개된다. 첫째는 계열의 축에서 발견한 단위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 내지는 결합하여 새로운 구성물을 구축하는 방식이다. 둘째는 결합의 축에서 발견한 (단위들의)조합규칙을 새로운 방식으로 적용하는 방식이다. 강정윤의 작업에서 이 두 가지 방식은 때로는 단독으로 또 때로는 함께 적용된다. 이러한 실험은 일상언어의 문법을 뒤트는 방식으로 새로운 언어를 창안하는 시인의 그것을 꽤 닮았다. 이제 그 양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강정윤은 뒤로 물러나 아파트 전체의 형상을 관조하는 것으로 자신의 분석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전체 형상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를 찾는다. 분석의 첫 번째 수준에서 아파트 전체형상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는 '층'이다. 통상적으로 '층'은 '가로로 긴 형태의 사각형'의 외양을 갖는다. 기본 단위로서 층은 '쌓기'의 방식으로 결합된다. 즉 하나의 층 위에 다른 하나의 층이 올라가고 그 위에 다시 하나의 층이 올라가는 일이 반복된다. 쌓기가 완료되면 아파트 전체의 외양이 형성된다. 그것은 '세로로 긴 사각형'의 모양새를 갖는다. 흥미로운 것은 하나는 '가로로 길고', 다른 하나는 '세로로 길지만' 층의 사각형태와 아파트 전체의 사각형태가 대부분 매우 닮았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파트의 전체 형태는 그 단위인 층의 형태를 내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아파트 건물이 구조적 통일성을 확보하는 한 방식이다. 하지만 분석을 좀 더 진행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기본단위로서 층은 다시 하위 단위로 분절 가능하다. 그 하위 단위란 '가구'다. 하나의 층은 다가구로 구성될 수도 있고 두 가구로 구성될 수도 있다. 주목할 점은 개별 가구의 사각형태는 전체(층)의 형태를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파트의 '전체형태-층'의 수준에서 관철되던 통일성이 '층-가구'의 수준에서는 느슨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느슨해짐'의 양상은 개별 가구를 구성하는 더 작은 다양한 사각형들(방, 창문)을 발견하는 순간 좀 더 부각될 것이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발견한 단위들과 결합규칙들이 강정윤 작업의 재료다. 먼저 층을 여러 개 만들고 그 층을 겹쳐 쌓는 방식으로 제작한 <Grid Structure> 연작을 제시할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구조물 주변에 비계(아시바)를 연상시키는 정사각형 그리드 틀을 배치한다. 주지하다시피 정사각형은 가로, 세로의 길이가 같고 따라서 여러 개의 정사각형으로 구성된 정사각형 그리드에서 항상 부분은 전체의 형상을 닮게 된다. 이러한 그리드의 구조적 양상은 아파트의 전체 구조적 양상과 독특한 협력 또는 긴장 관계를 형성한다.

 

이렇게 <Grid Structure> 는 아파트 구조의 전체적인 문맥에서 '아파트 전체형상-층'의 관계를 떼어내 새로운 문맥에 배치한 경우다. 또 <S니spended Struct니re>에서는 한 아파트에서 찾아낸 기본 단위로 1가구, 또는 2, 4, 6가구(의 이미지)를 떼어내 다른 아파트들 에서 찾아낸 가구단위들(의 이미지들)을 결합하는 방식을 취했다. 강정윤은 그 단위 조각들을 하나의 전체 사각형 안에 연이어 이어 붙였다. 이렇게 본래의 문맥 속에서 분리한 단위들을 새로운 문맥 속에서 결합하는 일은 본래의 문맥, 곧 아파트 건축물이 갖는 구조적 통일성과 안정을 노골적으로 가시화하거나 파괴하는 일이다.

 

강정윤의 재료는 또 다른 분석에서도 나온다. 그것은 다음의 관찰에서 유래한다. 앞서의 분석이 전체를 확인할 수 있는 먼 거리에서 시도된 것이라면 여기서는 전체의 확인이 불가능한 가까운 거리에서 분석이 시도된다. 여기서는 시각보다는 촉각적인 것이 좀 더 우세할 것이다. 즉 아파트는 멀리서 보면 평평하게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울퉁불퉁하다. 즉 아파트는 깊이 지각의 수준에서 여러 개의 레이어들로 구성된다(아파트의 이중창문을 예시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또는 심리 수준에서 여러 개의 레이어를 갖는다(예컨대 바깥쪽과 안쪽). 즉 여러 개의 레이어들로 겹쳐 있다. 이러한 인식에서 출발해서 강정윤은 지각, 인지 수준의 레이어들을 강조하는 전략을 취한다. 아파트의 표면을 벽감(niche) 같은 것에 깊이 밀어 넣고 L티3조명을 가하여 그림자를 창출하는 방식으로 레이어의 겹침을 강조하는 작업-<Array Structure〉이나 실내를 여러 레이어로 겹쳐서 구축한 후 LED를 순차적으로 점등시키는 방식으로 심리적 깊이를 강조한 <Sequence Structure> 연작이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이러한 두 작업은 평소에는 (또는 우리의 일상적 인식에서) 잘 보이지 않은 아파트의 어떤 구조적 양상을 독특한 방식으로 가시하, 부각시킴으로써 아파트의 구조적 양상을 노골적으로 가시화하거나 뒤흔드는 모양새다.

 

정리해보기로 하자. 강정윤은 아파트의 구조분석을 통해 얻은 단위들과 결합규칙들을 자신의 작업에서 새롭게 선택, 배치하는 방식으로 구조를 강화 내지는 전복한다. 이렇게 본다면 이 작가는 아파트 분석을 매개로 삼아 우리가 세상을 좀 더 낯설게, 또는 창조적으로 경험하는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또는 아도르노를 빌려 "인위적인 객관화 과정을 통해 사물의 세계를 초월한" 사례로 평가할 수도 있을게다.